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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각각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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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니이 2024. 12. 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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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사슴벌레식 문답 中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반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실버들 천만사 中




근데 엄마, 내가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는거야?
사랑하는 게 왜 좋고 기쁘지가 않아?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미워하면 되는데,
왜 우린 사랑을 하고 있어?
―실버들 천만사 中




끈질긴 온화함,
그게 혜진을 대하는 혜영의 오래된 방법이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의 속도를 유지하고 표정을 흩뜨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깜빡이 中




동생이 차창을 조금 내리고 아, 시골 냄새 난다, 했다.
내가 동생에게 경탄하는 동시에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렇게 금세 풀고 마는가.
―기억의 왈츠 中




조금 전에 내가 감지한 호감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자신만의 상념에 완전히 빠져든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구슬픈 패배감에 휩싸였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의 왈츠 中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릴까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기억의 왈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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