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요?
양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지.
―그런 걸 뭣하러 생각해요.
양희는 방금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말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나른해하더니 노트를 펼쳐서 뭔가를 적었다.
필용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고백한 사람은 양희인데 그 몇 분 사이에 그 사랑에 목매는 사람은 자기가 된 것 같았다.
―너무 한낮의 연애 p.20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킬킬킬킬······ 그 고백을 들은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너무 한낮의 연애 p.21
―오늘은 어때?
필용은 한 시간쯤 지나 그렇게 묻고 말았다.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는 선배가 극을 올려요.
―아니, 그것 말고.
―별일 없는데.
―아니, 그러니까 네가 어제 말한 그것 말이야. 오늘도 지속되고 있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필용은 자신이 긴장하는 걸 느꼈다. 왜 긴장하나? 필용은 그런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렇죠, 오늘도.
양희는 어제처럼 무심하게 대답했는데 그 말을 듣자 필용은 실제로 탁자가 흔들릴 만큼 몸을 떨었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p.24
시선은 일방적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p.28
장마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런 괴상한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햄버거를 먹으며 앉아 있는데 양희가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안해요, 사랑, 한 것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p.30
밤은 오고 잠은 가고 곁에는 침묵뿐이고 머릿속은 시끄럽고 그러면서도 뭐 또렷하게 어떤 생각은 또 할 수 없어서
그냥 나 자신이 깡통처럼 텅 빈 채 살랑바람에도 요란하게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
―세실리아 p.89
―그러면 노래를 하다가 죽었다고 할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때 죽으면 가장 불쌍하거든.
―좋은 생각이지만 왜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데?
단짝은 깜짝놀랐다.
―당연히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이 불쌍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반월 p.106
아마도 그녀는 상심한 그가 장난감 병정처럼 사랑을 앓다가 지쳐 고백해오길 기다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여기는 거대한 병원이고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모두가 불완전했고 그것만은 공평했으니까.
―우리가 어느 별에서 p.203
홍희정,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0) | 2025.01.01 |
---|---|
권여선, 각각의 계절 (0) | 2024.12.20 |
양귀자, 모순 (0) | 2024.12.01 |
김애란, 비행운 (0) | 2024.11.26 |
허연, 불온한 검은 피 (0) | 202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