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거긴 소리로 가득 차 있었는데 동시에 완전히 조용했어. 신기하지 않아?
음악이 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 내가 고요했던 적이 없어.
나는 압도되었는데 동시에 너무 자유로웠어.
구름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 구름을 만드는 게 우리들이었다니까!
―p.11
있잖아 경희야, 난 망해본 적이 없어.
망하는 게 뭔지 몰라.
왜냐면 처음부터 망했거든.
난 태어날 때부터 인생이 쭉 이런 상태였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p.282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서 내리라는 요구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하늘 한가운데잖아요? 여기서 내리면 나는 죽잖아요?
―p.286
남은 자들의 삶은 지속되어야 했다.
아마 진짜 악의라는 게 있다면, 우리를 구역질나게 하는 삶의 본질적인 끔찍함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사진이 포착한, 사람들이 끝까지 외면하고 싶어하는 진실이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압도적인 재난도, 남은 자들 앞에 펼쳐진 삶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
―p.323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지?
―p.330
여기가 천국이야.
네가 항상 오고 싶어하던 곳.
근데 왜 너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래, 거기는 천국이었어.
그런데 여자는 울어.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여기는 천국이야. 근데 왜 나는 울고 있냐고?
나 이제 그 여자를 이해할 수가 있어.
그 여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야.
여기는 천국이야. 그런데 왜 나는 울지?
이건 결국 같은 얘기야.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p.336
근데 나 진짜로 궁금한 게 있어.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가 수족관을 부수면 어떻게 돼?
죽겠지. 뻔하지.
하지만 수족관 속에 있는 건 살아 있는 거야?
―p.339
김애란, 비행운 (0) | 2024.11.26 |
---|---|
허연, 불온한 검은 피 (0) | 2024.11.26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0) | 2024.11.12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0) | 2024.11.04 |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0) | 202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