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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눈부신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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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니이 2024. 9. 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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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언니가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았고, 언니와 함께라면 위축될 이유가 없었으니까.

언니는 가끔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이모는 아무런 말 없이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는데,

그 무렵 내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상하게도 울고 싶어졌다.

 

 

 

 

그런 시간은 이모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무른 산딸기나 살구로 만들어주던 잼처럼

은은하고 달콤해서,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다 알았지만 어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너무 많은 상상을

멈출 수 없고 그래서 괴롭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하고 마는 그 바보 같은 마음이 간절함이란 말을 들은 이상

그때의 나는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네가 상대를 배려하는 방식이란 걸 알아.

그래서 나는 그걸 존중해주려고 노력해왔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걸로는 모자란 것 같아.

나는 네가 조금 더 간섭해주면 좋겠고 어리광을 부려주면 좋겠고,

 

 

 

 

"언니,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중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은 사과를 할 수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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